[유머] 밑에삼국지읽다가궁금한점을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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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자 : 선풍기 댓글댓글 : 0건 조회조회 : 21회 작성일작성일 : 20-10-19 07:18본문
유머란의 컨셉에 맞지 않다 삭제를 하여도 크게 개의치 않겠습니다.
태사자와 유비가 만났을때는 왜 조운과 유비가 만났을때처럼 필이 안꽃혔을까?
그건 연의와 정사의 차이에서 오는 겁니다.
소설을 쓰는 나관중은 훗날 무용면에서 촉에 지대한 공헌을 쓰고 소설의 훌륭한 재료인 영웅묘사적 측면이 조운에게 여러가지 있었지요
촉과 위의 한중전에서 황충과 여러 촉의 무장들을 무모하다싶을정도로 조운이 구해낸것과 아두구출과 등등.....조범과의 대화, 유비와의 친밀한 관계등 으로 해서 영웅적인 행위가 상당히 많았지요
또 조운의 임관경력에서 재밌는 것이 있습니다.
원소->공손찬->유비
원소의 무장일때는 체제상의 원소의 무장이죠
원소가 기주자사가 될때쯔음 지방행정장악을 하면서 행정체제상 밑의 군관료였기 때문에 원소막하였다고 기록되어진것이지
주공과 신하의 가신의 관계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공손찬에 조운이 신변을 위탁했을때는 말 그대로 조운이 위탁한것입니다.
연의에서는 백마전투외에 별 활약이 없었다지만 정사에서는 백마전투에서 조운이 일기당천으로 위용을 벌인 그런 행위따윈 없었고 그보다 군사행정적인 측면에서 활약을 했다고 합니다.
원소가 기주자사가 되면서 유주의 공손찬과 붙는 시점 즈음 유비가 서주로 이동을 하게 되는데, 이런 시간상의 논리를 따져보면 공손찬 휘하시절 조운과 유비는 만났을 가능성이 99%입니다.
필이 꽃혔다느니...연의가 만들어낸 허구일수도 어쩌면 정사에 기록되지 않은 시간이 묻어버린 진실인데 어처구니없게 소설이 진실을 규명핸걸지도 아무도 모릅니다.
분명한것은 훗날 유비휘하에 사관을 한 조운의 정사에서의 기록을 보고 나관중이 유비와 조운의 삘이라는건 소설의 복선을 위해 만들어논 구도란 것입니다.
반면 태사자는 고향이 북해이지만 자신의 임관지가 정해지기 전이었거나 막 정해진 시점인데 태사자의 임관지는 양주였습니다. 유요가 있는 건업 손책이 소패왕이 되게 한 상대입니다.
태사자는 북해에서의 한차례의 유비와의 인연을 끝으로 이릉전투와 적벽전투에서 그다지 유비와 얽힐 일이 없었고 기록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연유로 삘이 꽃혔을지 않꽃혔을지 모르겠지만 삘이 꽃힐 일을 나관중이 소설에서 적었다면 훗날 역사적 흐름으로 비추어볼때 연의에서 그부분은 사문이 될 가능성이 99%입니다.....유비와 태사자와는 이시점 이후 아무런 관련이 없으므로...
마지막으로 태사자와 조운의 공훈?
삼국지 게임에 익숙해있는 우리의 삼국지에 대한 지식으로 비추어볼때
조운의 무력과 태사자의 무력은 우리가 게임에서 욕심내는 무력수치 90이상입니다.
또한 우리의 장군 모으기 취향상 5호장군을 모을때 조운이란 장수는 아주 훌륭한 장수입니다.
그러나 조운이 과연 공훈을 세웠나?
유비휘하 조운의 공훈입니다.(연의 정사 짬뽕)
1. 신야에서의 서서와 제갈량 지휘하 하후돈과 조인 격퇴에서 공훈
이 두전투에서 조운은 주로 배후 유격대를 지휘 퇴각하는 적을 섬멸하거나 적을 매복하곤 합니다. 당시 유비의 군세로 볼때 군대의 규모는 훗날 출사표나 삼국정립후 전투에 크게 미치지 못합니다. 즉, 단지 유격부대 지휘관이었습니다.
2. 형주퇴각에서의 공훈
강하의 유기의 군세와 관우가 합류해서 응원을 하기 위해 떠나있는동안 유비의 잔여부대는 제갈량과 장비가 이끌고 있었습니다.
조운은 인질이 될 경우 상당히 난감한 유비일가 호위무사였습니다.
친위대장이 직위가 높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총지휘관 아래입니다.
정사에서 기록된것은 없으나 연의에서 역시 무용적인 측면에서 공훈을 상당히 세웁니다.
3. 적벽대전후 조조 퇴로 매복
상당 공훈을 세웁니다만 정사에서는 없습니다.
4. 계릉태수 조범과의 한판
이 경우 조운이 우리가 잘 모르는 한가지 위상을 찾을 수 있습니다
계릉 탈환(유비는 유표와 유기의 계승관계로 형주에서의 정당성을 찾았으므로 탈환이라 한다, 또한 이는 오의 형주반환요구에도 적절한 거절명분이 될 수 있었다.)
에서의 조운의 공적이란 군사를 몰아 적을 섬멸하고 땅을 차지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외교적인 측면에서 계릉을 탈환했습니다.
5. 한중공방전
황충등을 구원할때 조운의 위상은 군세를 지휘하는 총사령관이나 예하 사령관이 아니라 5호장군임에도 불구 부대단위의 독립군을 이끌고 있었습니다. 이전투에서 황충과 수많은 촉의 장수를 단신으로 구해낸 것은 정사에도 기록되어 있으며 유비는"진정 담대한 장수로고"라고 할 만큼 공훈을 세웠습니다.
6. 북벌
북벌에서 제갈량이 당연히 총지휘하였고 조운은 예하사령관으로서 활약했습니다.
7. 군사행정
촉입성후 승상 제갈량에게 여러가지 법령적인 간언을 했고 이는 대부분 채택이 되었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일히 열거할 수는 없었지만 조운은 촉의 치안과 군사행정에서 촉의 군사소모를 지탱한 행정적인 수완을 다수 발휘했다고 기록되어 집니다.
정리하자면 조운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같이 무용과 군사를 이끌고 휘몰아쳐서 적을 섬멸하는 대장군의 스타일이 아니었습니다.
호위무사였고 가까이서 주군에게 직언을 할 수 있으며 청렴결백한 한명의 무장이었습니다. 무용이 뛰어남과 동시에 여러 군사행정적인 측면에서 높은 수완을 발휘 했으며, 관우와 장비를 비롯 간옹, 미축, 손건등 유비의 오래된 가신들과도 좋은 관계를 수립했습니다.
관우와 장비는 무용도 대단하였지만 군사를 이끌고 적을 섬멸하는 장수의 기질역시 탁월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일기당천이라고 하지만 만단위의 적을 단신의 힘으로 전세를 바꾸는건 예나 지금이나 하나의 조건으로서 영향을 줄 수 있으나 전체의 조건으로서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관우와 장비 여포등 무용이 뛰어난 장수가 군사를 이끌고 지휘하여 적을 섬멸하는 것은 무용뿐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이 이외의 것에 조운은 약간 부족하지 않았을까 저는 생각합니다.
군대를 다녀온 분은 아시겠지만 힘만 우라지게 쌔다고 잘생겼다고 병사들이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저사람이라면 명령대로 따라도 죽지 않고 고향에 가겠지...]라는 마음을 줄 수 있는 것과
[말을 안들으면 적에게 죽기 전에 죽겠네 XX...]라는 위엄등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시 한명이 다수를 관장하는건 피라미드식 하향식 명령계통일 수 밖에 없으므로 이런 조직 체계에서도 뛰어난 수완을 발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명령을 충실히 들을 수 있는 이유를 장수는 제공해야 합니다.
현실에서 스타를 하듯 마우스 클릭한다고 확실히 움직이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죠
여러가지 가정상 조운, 전위, 허저, 태사자 등의 무장들은 이런 부분이 부족했지 싶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왜? 행정적인 측면에서 보듯 조운의 뛰어난 지식과 지면에 열심히 기술해도 표현이 모자른 조운의 무용에도 불구 대규모의 군사지휘를 한번도 해본적이 없을까요? 유아독존 관우마저도 인정한 5호장군임에도 불구하고요....
태사자와 유비가 만났을때는 왜 조운과 유비가 만났을때처럼 필이 안꽃혔을까?
그건 연의와 정사의 차이에서 오는 겁니다.
소설을 쓰는 나관중은 훗날 무용면에서 촉에 지대한 공헌을 쓰고 소설의 훌륭한 재료인 영웅묘사적 측면이 조운에게 여러가지 있었지요
촉과 위의 한중전에서 황충과 여러 촉의 무장들을 무모하다싶을정도로 조운이 구해낸것과 아두구출과 등등.....조범과의 대화, 유비와의 친밀한 관계등 으로 해서 영웅적인 행위가 상당히 많았지요
또 조운의 임관경력에서 재밌는 것이 있습니다.
원소->공손찬->유비
원소의 무장일때는 체제상의 원소의 무장이죠
원소가 기주자사가 될때쯔음 지방행정장악을 하면서 행정체제상 밑의 군관료였기 때문에 원소막하였다고 기록되어진것이지
주공과 신하의 가신의 관계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공손찬에 조운이 신변을 위탁했을때는 말 그대로 조운이 위탁한것입니다.
연의에서는 백마전투외에 별 활약이 없었다지만 정사에서는 백마전투에서 조운이 일기당천으로 위용을 벌인 그런 행위따윈 없었고 그보다 군사행정적인 측면에서 활약을 했다고 합니다.
원소가 기주자사가 되면서 유주의 공손찬과 붙는 시점 즈음 유비가 서주로 이동을 하게 되는데, 이런 시간상의 논리를 따져보면 공손찬 휘하시절 조운과 유비는 만났을 가능성이 99%입니다.
필이 꽃혔다느니...연의가 만들어낸 허구일수도 어쩌면 정사에 기록되지 않은 시간이 묻어버린 진실인데 어처구니없게 소설이 진실을 규명핸걸지도 아무도 모릅니다.
분명한것은 훗날 유비휘하에 사관을 한 조운의 정사에서의 기록을 보고 나관중이 유비와 조운의 삘이라는건 소설의 복선을 위해 만들어논 구도란 것입니다.
반면 태사자는 고향이 북해이지만 자신의 임관지가 정해지기 전이었거나 막 정해진 시점인데 태사자의 임관지는 양주였습니다. 유요가 있는 건업 손책이 소패왕이 되게 한 상대입니다.
태사자는 북해에서의 한차례의 유비와의 인연을 끝으로 이릉전투와 적벽전투에서 그다지 유비와 얽힐 일이 없었고 기록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연유로 삘이 꽃혔을지 않꽃혔을지 모르겠지만 삘이 꽃힐 일을 나관중이 소설에서 적었다면 훗날 역사적 흐름으로 비추어볼때 연의에서 그부분은 사문이 될 가능성이 99%입니다.....유비와 태사자와는 이시점 이후 아무런 관련이 없으므로...
마지막으로 태사자와 조운의 공훈?
삼국지 게임에 익숙해있는 우리의 삼국지에 대한 지식으로 비추어볼때
조운의 무력과 태사자의 무력은 우리가 게임에서 욕심내는 무력수치 90이상입니다.
또한 우리의 장군 모으기 취향상 5호장군을 모을때 조운이란 장수는 아주 훌륭한 장수입니다.
그러나 조운이 과연 공훈을 세웠나?
유비휘하 조운의 공훈입니다.(연의 정사 짬뽕)
1. 신야에서의 서서와 제갈량 지휘하 하후돈과 조인 격퇴에서 공훈
이 두전투에서 조운은 주로 배후 유격대를 지휘 퇴각하는 적을 섬멸하거나 적을 매복하곤 합니다. 당시 유비의 군세로 볼때 군대의 규모는 훗날 출사표나 삼국정립후 전투에 크게 미치지 못합니다. 즉, 단지 유격부대 지휘관이었습니다.
2. 형주퇴각에서의 공훈
강하의 유기의 군세와 관우가 합류해서 응원을 하기 위해 떠나있는동안 유비의 잔여부대는 제갈량과 장비가 이끌고 있었습니다.
조운은 인질이 될 경우 상당히 난감한 유비일가 호위무사였습니다.
친위대장이 직위가 높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총지휘관 아래입니다.
정사에서 기록된것은 없으나 연의에서 역시 무용적인 측면에서 공훈을 상당히 세웁니다.
3. 적벽대전후 조조 퇴로 매복
상당 공훈을 세웁니다만 정사에서는 없습니다.
4. 계릉태수 조범과의 한판
이 경우 조운이 우리가 잘 모르는 한가지 위상을 찾을 수 있습니다
계릉 탈환(유비는 유표와 유기의 계승관계로 형주에서의 정당성을 찾았으므로 탈환이라 한다, 또한 이는 오의 형주반환요구에도 적절한 거절명분이 될 수 있었다.)
에서의 조운의 공적이란 군사를 몰아 적을 섬멸하고 땅을 차지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외교적인 측면에서 계릉을 탈환했습니다.
5. 한중공방전
황충등을 구원할때 조운의 위상은 군세를 지휘하는 총사령관이나 예하 사령관이 아니라 5호장군임에도 불구 부대단위의 독립군을 이끌고 있었습니다. 이전투에서 황충과 수많은 촉의 장수를 단신으로 구해낸 것은 정사에도 기록되어 있으며 유비는"진정 담대한 장수로고"라고 할 만큼 공훈을 세웠습니다.
6. 북벌
북벌에서 제갈량이 당연히 총지휘하였고 조운은 예하사령관으로서 활약했습니다.
7. 군사행정
촉입성후 승상 제갈량에게 여러가지 법령적인 간언을 했고 이는 대부분 채택이 되었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일히 열거할 수는 없었지만 조운은 촉의 치안과 군사행정에서 촉의 군사소모를 지탱한 행정적인 수완을 다수 발휘했다고 기록되어 집니다.
정리하자면 조운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같이 무용과 군사를 이끌고 휘몰아쳐서 적을 섬멸하는 대장군의 스타일이 아니었습니다.
호위무사였고 가까이서 주군에게 직언을 할 수 있으며 청렴결백한 한명의 무장이었습니다. 무용이 뛰어남과 동시에 여러 군사행정적인 측면에서 높은 수완을 발휘 했으며, 관우와 장비를 비롯 간옹, 미축, 손건등 유비의 오래된 가신들과도 좋은 관계를 수립했습니다.
관우와 장비는 무용도 대단하였지만 군사를 이끌고 적을 섬멸하는 장수의 기질역시 탁월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일기당천이라고 하지만 만단위의 적을 단신의 힘으로 전세를 바꾸는건 예나 지금이나 하나의 조건으로서 영향을 줄 수 있으나 전체의 조건으로서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관우와 장비 여포등 무용이 뛰어난 장수가 군사를 이끌고 지휘하여 적을 섬멸하는 것은 무용뿐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이 이외의 것에 조운은 약간 부족하지 않았을까 저는 생각합니다.
군대를 다녀온 분은 아시겠지만 힘만 우라지게 쌔다고 잘생겼다고 병사들이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저사람이라면 명령대로 따라도 죽지 않고 고향에 가겠지...]라는 마음을 줄 수 있는 것과
[말을 안들으면 적에게 죽기 전에 죽겠네 XX...]라는 위엄등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시 한명이 다수를 관장하는건 피라미드식 하향식 명령계통일 수 밖에 없으므로 이런 조직 체계에서도 뛰어난 수완을 발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명령을 충실히 들을 수 있는 이유를 장수는 제공해야 합니다.
현실에서 스타를 하듯 마우스 클릭한다고 확실히 움직이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죠
여러가지 가정상 조운, 전위, 허저, 태사자 등의 무장들은 이런 부분이 부족했지 싶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왜? 행정적인 측면에서 보듯 조운의 뛰어난 지식과 지면에 열심히 기술해도 표현이 모자른 조운의 무용에도 불구 대규모의 군사지휘를 한번도 해본적이 없을까요? 유아독존 관우마저도 인정한 5호장군임에도 불구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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