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 [단편호러]수술실writtenbycenny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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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자 : 선풍기 댓글댓글 : 0건 조회조회 : 8회 작성일작성일 : 20-10-16 13:57본문
수술실
태풍이 북상하면서 뜨거운 공기가 밀려 들어왔다. 뜨거운 공기는 수증기를 안고 병원 복도
를 떠돌아 다녔다. 가을이라 에어컨은 돌아가지 않았고, 사람들의 목덜미에 땀이 맺혔다.
모두 이 더위에 무기력해진 것 같다. 와이셔츠 칼라가 땀에 젖어도 넥타이를 풀 수는 없
다.
52병동 6호실로 들어간다. 가운을 팔뚝까지 걷어 올렸으나 별로 시원함을 못 느낀다. 불쾌
지수는 꼭대기에 닿았다.
6호실 구석 침대에 ‘김숙자’라는 이름을 본다. 72세의 할머닌데, 대장암 수술이 예정되어
있다. 침대 옆에 서서 바라보자 할머니의 체구가 아주 작아 보인다.
“안녕하세요. 전 실습생인데요, 뭣 좀 물어보려고요. 오늘 오후에 수술 있는 거 아시죠? 지
금 몸 상태 안 좋은데 있으세요?”
할머니는 동그랗게 눈을 뜨고 입 주위의 주름을 움직인다.
“선생님. 내일 모래가 손자 생일이라오. 그리고 내 바깥양반 기일이기도 하고. 나 빨리 수
술 끝나서 나가야 하는디. 낼 모래 나갈 수 있겠수? 잠깐만 나갔다 오면 되는데.”
“수술 받고, 상처가 다 아물어야 움직일 수 있어요.”
내 대답과는 상관없이 할머니는 자신의 얘기를 꺼낸다.
“내 어렸을 적, 참 살기 어려웠다우. 혼인도 힘들게 했지. 원래 난 혼자 살 팔자였는데. 시
골도 시골보다 더 깊은 시골, 그런 곳에 살아서 남자가 없었다니까. 그런데 바깥 양반이
그 깊은 시골로 놀러온거야. 그리고 나랑 눈이 딱 맞았지. 그러고 보면 참 난 운이 좋은 사
람 같애.”
할머니의 얘기가 길어질 것 같아 침대 옆에 걸터앉았다. 할머니는 낮은 음성으로 계속 얘
기를 했다. 나이 치고는 목소리가 고왔다.
“그래서 어쩌다 혼인하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살았지. 뭐, 쉬운 일이 하나도 없어. 울 첫
째 애는 돌 막 넘기고 나서 죽었구, 셋째도 그때쯤 죽었을 거야. 그래도 살아있는 놈들이
다섯이라우. 나도 참 용하지, 용해…….”
얘기는 20분간 계속 되었고, 나도 뚜렷이 할 게 없었기 때문에 가만히 앉아 경청했다. 내
가 인사를 하고 나왔을 때, 시간은 오후 2시 30분을 막 넘어가고 있었다. 할머니 수술은 4
시로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기숙사에 들어가 잠시 눈을 붙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대장
암 수술은 시간이 길어 체력을 보충해놔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술이 늦게 잡혀서 저
녁 식사 시간을 기본으로 넘길 것 같았다.
이런 날씨에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힘이 빠진다. 정신까지 녹아버리는 것 같다.
2시가 되자 5층에 있는 수술병동으로 들어갔다.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5번 수술 방으로 들
어갔다. 할머니는 마취 준비 중이었다. 나를 보고 알은체를 했다. 할머니 옆으로 다가가 잠
깐 눈 붙였다 깨나면 수술 다 끝날 거라고 말했다. 코와 입으로 여러 개의 관들이 삽입되
고 할머니는 천천히 마취에 빠져들었다.
등으로 땀이 흘렀다. 수술실은 바깥보다 더 나을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한증막에 들
어가 있는 기분이었다. 교수님이나 레지던트들도 이마에 땀이 흘러 수술 마스크가 젖었
다. 불쾌지수는 이미 상한선을 넘은 것 같았다. 모두들 살짝만 건드려도 폭발할 것 같은 얼
굴을 하고 있었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때 교수님은 하행결장을 반 정도 자르고 있을 때였다. 교수님의 입에
서 레지던트들을 욕하는 소리가 쉼 없이 흘러나왔다.
"이 놈들아. 그 따위로 수술을 준비하는 놈들이 어디 있어? 너희들이 의사야! 도대체 지금
까지 내가 한 얘기는 뭐로 들은 거야!"
날씨 탓인지 평소에 하던 말보다 심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원래 입이 험한 교수님이었는
데, 오늘은 더욱 긴장감이 흘렀다.
"시야 확보 제대로 못해? 그래서 어떻게 수술 어시스트를 서겠다는 거야? 그 손 치워! 내
가 움직이면 거기에 맞춰서 미리 움직여야지!"
교수님의 손이 레지던트의 손을 쳤다. 레지던트는 옆으로 조금 물러났다. 마스크 위로 보
이는 눈이 심상치 않았다. 레지던트의 눈썹이 바르르 떨렸다.
평소라면 분위기를 봐서 실습생들은 수술 대기실에 가서 쉬고 오는 일이 가능했다. 하지
만, 수술실의 분위기는 나를 꼼짝 못하게 만들어 버렸다. 숨쉬는 것조차 불편했다. 마스크
아래로 손을 넣어 마스크와 코 사이를 벌렸다.
"뭐 하는 거야! 하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그따위로 해서 어떻게 수술 방에 들어올 생
각을 해!"
교수님은 잠시 뒤 장갑을 벗어 던지고 수술실을 나가버렸다. 장갑은 수술실의 어두운 구석
에서 시체처럼 꼬부라졌다. 방안에는 살벌하면서도 불쾌한 공기가 흘렀다. 이런 공기는 한
번 마시면 폐포에 달라붙어 일주일 정도 사람을 괴롭힐 수 있을 것이다.
다음에 칼을 잡은 것은 레지던트였다. 이번에는 레지던트가 간호사에게 욕을 하기 시작했
다. 수술 도구를 제대로 전달해 주지 못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레지던트의 눈이나 간호사
의 눈은, 이미 이성이 있는 사람들이 가진 그것이 아니었다.
"지금, 달라는 게 그거에요? 수술실 2년째 아니에요? 큰 거랑 작은 것도 구분 못해요?"
간호사는 아무 말이 없었다. 평소에 말이 많은 어시스트 간호사였는데, 레지던트의 말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너 씻고 와."
레지던트가 나를 가리켰다. 나는 밖으로 뛰어 나가 손을 씻었다. 수술병동 복도에는 침대
를 끌고 가는 사람 한명이 보였을 뿐 썰렁한 공기가 감돌았다. 수술 스케줄이 별로 없는 날
인 것 같다.
5번 수술실로 돌아와 수술용 가운을 입었다. 심장 박동 소리, 수술 도구가 받침대와 부딪
치는 소리가 평소보다 크게 들렸다.
"여기 서."
레지던트가 가리킨 자리에 섰다. 그리고 레지던트가 교수 옆에서 잡고 있던 도구를 손에
감아쥐었다.
"똑바로 못 당겨?"
레지던트는 시비조의 말을 던졌고, 나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수술 장갑 안으로 땀이 차
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장에서 분비물이 조금 비어져 나왔다.
"이거. 관장 제대로 한거야?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수술하란 얘기야?"
이번엔 간호사가 대꾸를 했다.
"뭐, 내가 준비했나요? 왜 저한테 그래요?"
"뭐야?"
험악한 분위기가 둘 사이에 감돌고, 둘 사이에 서 있는 나는 땀을 비 오듯이 흘렸다.
"지금 잘했다는 거야?"
마스크 위로 살짝 드러난 레지던트의 눈이 간호사를 노려보았다. 잠시 시간이 멈춘 듯 했
다. 할머니의 생존을 알리는 심장 박동 소리만이 이곳이 시간이 흐르는 곳이란 사실을 알
려주고 있었다.
레지던트는 들고 있던 도구를 간호사 앞의 수술도구 받침대 위에 툭 던졌다. 그리고는 손
을 들어 마스크를 벗었다. 무균 상태인 장갑이 마스크를 만진다는 것은 수술의 종결을 뜻
하는 일이기도 했다.
레지던트는 장갑과 모자를 쓰레기통에 버린 후 수술실을 나가버렸다. 간호사는 어이없다
는 듯이 한 손으로 수술대를 짚은 채 천장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이라도 해서 분위기를 유
하게 만들어야 갰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씩씩거리던 간호사는 마스크를 벗더니 어시스트 자리에서 나왔다.
"저기요."
나는 놀라 수술실을 나가는 간호사의 등에 대고 말했다. 하지만, 내 목소리를 못들은 건
지, 듣고 싶지 않은 건지, 간호사는 문을 지나 시야에서 사라졌다.
마취과 스텝들은 이미 수술실에 없었다. 처음 마취를 주도하던 마취과 레지던트는 수술
시작 후 30분가량 기계 앞에서 졸더니, 그 후로 보이지 않았다.
남아 있는 것은 배가 열린 채 누워있는 할머니와 나였다. 나도 나가버리고 싶었으나, 할머
니를 저 모양으로 놓고는 나갈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
다. 난 실습생일 뿐이다. 적어도 잘려 있는 장을 보며 무엇인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사실
은 알고 있었다.
기계를 통해 들려오는 심장박동 소리를 들으며 사람들을 기다렸다. 그러나 교수님도 레지
던트도, 어느 간호사 하나 보이지 않았다.
10분 정도 지나자 할머니 장이 밖으로 튀어나오려 했다. 마취가 깨고 있는 것이다. 마취가
깨면 환자가 배에 힘을 주게 되고, 배가 열려 있다면 장이 빠져나오게 된다. 나는 장을 두
손으로 누르면서 마취과를 불렀다. 그러나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마취과’와 ‘5번방’을 번
갈아 불렀으나, 수술 방이 10개나 되는 커다란 수술병동에 내 목소리를 듣는 사람은 한명
도 없는 것 같았다.
손바닥과 손가락에 할머니의 장이 꿈틀대는 것이 느껴졌다. 받침대 위에 있는 수술 도구들
이 보였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대장암 수술 어시스트를 많이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
떻게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도 잘 떠오르지 않았다.
안되겠다 싶어 복도로 나왔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시 소리를 질렀으나 공허한 메
아리만 수술병동 복도에 울려 퍼졌다.
나는 다시 5번방으로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기계에서 들리는 맥박소리는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이대로 할머니가 깨어난다면 엄청난 고통을 느끼며 쇼크로 사망하게 될 것은 의심
의 여지가 없다. 마취과 기계를 보았으나 수많은 계기판들과 버튼들, 내가 조작하기는 무
리였다. 할머니의 몸은 경련 일어나는 것처럼 꿈틀대고 있다. 내일 모래면 손자 생일에다
가 할아버지 기일까지 챙겨야 하는 분이다. 그러나 이미, 장은 튀어 나와 파도에 떠밀려온
해초처럼 수술대 아래로 늘어졌다.
내가 입고 있는 수술복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었다. 정말 찝찝한 날이다. 짜증이 머리끝까
지 올라왔다.
나는 다른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할머니를 혼자 남겨두고 수술실을 나왔다.
-The end
출처 : www.adultoby.com
재밌게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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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떠돌아 다녔다. 가을이라 에어컨은 돌아가지 않았고, 사람들의 목덜미에 땀이 맺혔다.
모두 이 더위에 무기력해진 것 같다. 와이셔츠 칼라가 땀에 젖어도 넥타이를 풀 수는 없
다.
52병동 6호실로 들어간다. 가운을 팔뚝까지 걷어 올렸으나 별로 시원함을 못 느낀다. 불쾌
지수는 꼭대기에 닿았다.
6호실 구석 침대에 ‘김숙자’라는 이름을 본다. 72세의 할머닌데, 대장암 수술이 예정되어
있다. 침대 옆에 서서 바라보자 할머니의 체구가 아주 작아 보인다.
“안녕하세요. 전 실습생인데요, 뭣 좀 물어보려고요. 오늘 오후에 수술 있는 거 아시죠? 지
금 몸 상태 안 좋은데 있으세요?”
할머니는 동그랗게 눈을 뜨고 입 주위의 주름을 움직인다.
“선생님. 내일 모래가 손자 생일이라오. 그리고 내 바깥양반 기일이기도 하고. 나 빨리 수
술 끝나서 나가야 하는디. 낼 모래 나갈 수 있겠수? 잠깐만 나갔다 오면 되는데.”
“수술 받고, 상처가 다 아물어야 움직일 수 있어요.”
내 대답과는 상관없이 할머니는 자신의 얘기를 꺼낸다.
“내 어렸을 적, 참 살기 어려웠다우. 혼인도 힘들게 했지. 원래 난 혼자 살 팔자였는데. 시
골도 시골보다 더 깊은 시골, 그런 곳에 살아서 남자가 없었다니까. 그런데 바깥 양반이
그 깊은 시골로 놀러온거야. 그리고 나랑 눈이 딱 맞았지. 그러고 보면 참 난 운이 좋은 사
람 같애.”
할머니의 얘기가 길어질 것 같아 침대 옆에 걸터앉았다. 할머니는 낮은 음성으로 계속 얘
기를 했다. 나이 치고는 목소리가 고왔다.
“그래서 어쩌다 혼인하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살았지. 뭐, 쉬운 일이 하나도 없어. 울 첫
째 애는 돌 막 넘기고 나서 죽었구, 셋째도 그때쯤 죽었을 거야. 그래도 살아있는 놈들이
다섯이라우. 나도 참 용하지, 용해…….”
얘기는 20분간 계속 되었고, 나도 뚜렷이 할 게 없었기 때문에 가만히 앉아 경청했다. 내
가 인사를 하고 나왔을 때, 시간은 오후 2시 30분을 막 넘어가고 있었다. 할머니 수술은 4
시로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기숙사에 들어가 잠시 눈을 붙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대장
암 수술은 시간이 길어 체력을 보충해놔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술이 늦게 잡혀서 저
녁 식사 시간을 기본으로 넘길 것 같았다.
이런 날씨에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힘이 빠진다. 정신까지 녹아버리는 것 같다.
2시가 되자 5층에 있는 수술병동으로 들어갔다.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5번 수술 방으로 들
어갔다. 할머니는 마취 준비 중이었다. 나를 보고 알은체를 했다. 할머니 옆으로 다가가 잠
깐 눈 붙였다 깨나면 수술 다 끝날 거라고 말했다. 코와 입으로 여러 개의 관들이 삽입되
고 할머니는 천천히 마취에 빠져들었다.
등으로 땀이 흘렀다. 수술실은 바깥보다 더 나을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한증막에 들
어가 있는 기분이었다. 교수님이나 레지던트들도 이마에 땀이 흘러 수술 마스크가 젖었
다. 불쾌지수는 이미 상한선을 넘은 것 같았다. 모두들 살짝만 건드려도 폭발할 것 같은 얼
굴을 하고 있었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때 교수님은 하행결장을 반 정도 자르고 있을 때였다. 교수님의 입에
서 레지던트들을 욕하는 소리가 쉼 없이 흘러나왔다.
"이 놈들아. 그 따위로 수술을 준비하는 놈들이 어디 있어? 너희들이 의사야! 도대체 지금
까지 내가 한 얘기는 뭐로 들은 거야!"
날씨 탓인지 평소에 하던 말보다 심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원래 입이 험한 교수님이었는
데, 오늘은 더욱 긴장감이 흘렀다.
"시야 확보 제대로 못해? 그래서 어떻게 수술 어시스트를 서겠다는 거야? 그 손 치워! 내
가 움직이면 거기에 맞춰서 미리 움직여야지!"
교수님의 손이 레지던트의 손을 쳤다. 레지던트는 옆으로 조금 물러났다. 마스크 위로 보
이는 눈이 심상치 않았다. 레지던트의 눈썹이 바르르 떨렸다.
평소라면 분위기를 봐서 실습생들은 수술 대기실에 가서 쉬고 오는 일이 가능했다. 하지
만, 수술실의 분위기는 나를 꼼짝 못하게 만들어 버렸다. 숨쉬는 것조차 불편했다. 마스크
아래로 손을 넣어 마스크와 코 사이를 벌렸다.
"뭐 하는 거야! 하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그따위로 해서 어떻게 수술 방에 들어올 생
각을 해!"
교수님은 잠시 뒤 장갑을 벗어 던지고 수술실을 나가버렸다. 장갑은 수술실의 어두운 구석
에서 시체처럼 꼬부라졌다. 방안에는 살벌하면서도 불쾌한 공기가 흘렀다. 이런 공기는 한
번 마시면 폐포에 달라붙어 일주일 정도 사람을 괴롭힐 수 있을 것이다.
다음에 칼을 잡은 것은 레지던트였다. 이번에는 레지던트가 간호사에게 욕을 하기 시작했
다. 수술 도구를 제대로 전달해 주지 못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레지던트의 눈이나 간호사
의 눈은, 이미 이성이 있는 사람들이 가진 그것이 아니었다.
"지금, 달라는 게 그거에요? 수술실 2년째 아니에요? 큰 거랑 작은 것도 구분 못해요?"
간호사는 아무 말이 없었다. 평소에 말이 많은 어시스트 간호사였는데, 레지던트의 말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너 씻고 와."
레지던트가 나를 가리켰다. 나는 밖으로 뛰어 나가 손을 씻었다. 수술병동 복도에는 침대
를 끌고 가는 사람 한명이 보였을 뿐 썰렁한 공기가 감돌았다. 수술 스케줄이 별로 없는 날
인 것 같다.
5번 수술실로 돌아와 수술용 가운을 입었다. 심장 박동 소리, 수술 도구가 받침대와 부딪
치는 소리가 평소보다 크게 들렸다.
"여기 서."
레지던트가 가리킨 자리에 섰다. 그리고 레지던트가 교수 옆에서 잡고 있던 도구를 손에
감아쥐었다.
"똑바로 못 당겨?"
레지던트는 시비조의 말을 던졌고, 나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수술 장갑 안으로 땀이 차
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장에서 분비물이 조금 비어져 나왔다.
"이거. 관장 제대로 한거야?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수술하란 얘기야?"
이번엔 간호사가 대꾸를 했다.
"뭐, 내가 준비했나요? 왜 저한테 그래요?"
"뭐야?"
험악한 분위기가 둘 사이에 감돌고, 둘 사이에 서 있는 나는 땀을 비 오듯이 흘렸다.
"지금 잘했다는 거야?"
마스크 위로 살짝 드러난 레지던트의 눈이 간호사를 노려보았다. 잠시 시간이 멈춘 듯 했
다. 할머니의 생존을 알리는 심장 박동 소리만이 이곳이 시간이 흐르는 곳이란 사실을 알
려주고 있었다.
레지던트는 들고 있던 도구를 간호사 앞의 수술도구 받침대 위에 툭 던졌다. 그리고는 손
을 들어 마스크를 벗었다. 무균 상태인 장갑이 마스크를 만진다는 것은 수술의 종결을 뜻
하는 일이기도 했다.
레지던트는 장갑과 모자를 쓰레기통에 버린 후 수술실을 나가버렸다. 간호사는 어이없다
는 듯이 한 손으로 수술대를 짚은 채 천장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이라도 해서 분위기를 유
하게 만들어야 갰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씩씩거리던 간호사는 마스크를 벗더니 어시스트 자리에서 나왔다.
"저기요."
나는 놀라 수술실을 나가는 간호사의 등에 대고 말했다. 하지만, 내 목소리를 못들은 건
지, 듣고 싶지 않은 건지, 간호사는 문을 지나 시야에서 사라졌다.
마취과 스텝들은 이미 수술실에 없었다. 처음 마취를 주도하던 마취과 레지던트는 수술
시작 후 30분가량 기계 앞에서 졸더니, 그 후로 보이지 않았다.
남아 있는 것은 배가 열린 채 누워있는 할머니와 나였다. 나도 나가버리고 싶었으나, 할머
니를 저 모양으로 놓고는 나갈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
다. 난 실습생일 뿐이다. 적어도 잘려 있는 장을 보며 무엇인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사실
은 알고 있었다.
기계를 통해 들려오는 심장박동 소리를 들으며 사람들을 기다렸다. 그러나 교수님도 레지
던트도, 어느 간호사 하나 보이지 않았다.
10분 정도 지나자 할머니 장이 밖으로 튀어나오려 했다. 마취가 깨고 있는 것이다. 마취가
깨면 환자가 배에 힘을 주게 되고, 배가 열려 있다면 장이 빠져나오게 된다. 나는 장을 두
손으로 누르면서 마취과를 불렀다. 그러나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마취과’와 ‘5번방’을 번
갈아 불렀으나, 수술 방이 10개나 되는 커다란 수술병동에 내 목소리를 듣는 사람은 한명
도 없는 것 같았다.
손바닥과 손가락에 할머니의 장이 꿈틀대는 것이 느껴졌다. 받침대 위에 있는 수술 도구들
이 보였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대장암 수술 어시스트를 많이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
떻게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도 잘 떠오르지 않았다.
안되겠다 싶어 복도로 나왔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시 소리를 질렀으나 공허한 메
아리만 수술병동 복도에 울려 퍼졌다.
나는 다시 5번방으로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기계에서 들리는 맥박소리는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이대로 할머니가 깨어난다면 엄청난 고통을 느끼며 쇼크로 사망하게 될 것은 의심
의 여지가 없다. 마취과 기계를 보았으나 수많은 계기판들과 버튼들, 내가 조작하기는 무
리였다. 할머니의 몸은 경련 일어나는 것처럼 꿈틀대고 있다. 내일 모래면 손자 생일에다
가 할아버지 기일까지 챙겨야 하는 분이다. 그러나 이미, 장은 튀어 나와 파도에 떠밀려온
해초처럼 수술대 아래로 늘어졌다.
내가 입고 있는 수술복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었다. 정말 찝찝한 날이다. 짜증이 머리끝까
지 올라왔다.
나는 다른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할머니를 혼자 남겨두고 수술실을 나왔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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